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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넷, 청소년...그리고 교회?!(펌글)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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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00

 
 
손병덕 교수 (신85, 목사)
미국 워싱턴 대학교(St. Louis) 사회사업학 석사
미국 하버드 대학교 (기독교/사회윤리 및 복지정책 전공) 석사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사회정책/사회사업학 박사
現.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은 PC 보급률, 전자상거래 관련 업체수가 아시아 최고를 자랑하며, 무선 인터넷 가입자만도 2000년 12월말 현재 1천 600만 명에 달하고 인터넷 사용시간에 있어서는 인터넷 종주국인 미국을 앞지르는 등 과히 온라인대륙은 한국 네티즌 개척자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선점되고 있다. 일찍이 아메리카 평원을 내달아 먼저 깃대를 꽂는 사람이 땅 주인이 되던 시절이 21세기에 인터넷을 통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을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며,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빠져든다. 마라도에 단 2명이 등교하는 분교까지 고속 인터넷 접속망이 구축되는 급속한 바람을 타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컴퓨터와 밥 먹고,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청소년기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주변인으로서의 정신적 제약을, 인터넷이 인도하는 자기만의 자유를 누리고 탐닉한다. 부모와 학교의 간섭 그리고 사회적인 규제와 제약 등의 시공간적 제한들을 일순간에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상당부문 익명성마저 보장하는 인터넷 자유여행이 그들에겐 감미로운 구원의 메시지처럼 여겨지기에 틀림이 없다.
우리 가운데 인터넷이 주는 유용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게 거론된다. 인터넷 상의 많은 채팅 방들이 청소년들에게 짝짓기와 언어폭력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채팅 방들의 상당수가 중․고등학생들에 의해 운영되고 번개팅의 공공연한 매개체로 사용된다.
일이 이만큼 되자 교육부는 올해 1학기부터 초중고 수업시간에 인터넷 윤리교육을 실시한다는 고육지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상에서의 언어폭력, 해킹, ID도용, 음란 폭력물 접촉 및 유통 등을 계도한다는 것인데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여기에서 그러한 정부차원의 시도가 현재 전면적으로 열려진 인터넷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차라리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우리의 관심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 만한 건전한 인터넷 싸이트 가운데 교회가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우선 결론적으로 답하면 ''NO''이다. 지난 1월 18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http:best,icec,or,kr)가 발간한 청소년들의 건전한 권장사이트 목록에 의하면 총 180여 갱의 청소년 권장사이트 가운데 교회가 운영하는 곳은 안타깝게도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그 권장 사이트들 가운데 개개인의 기독인들이 유지하는 곳들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교회의 기여와 노력들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청소년 권장 사이트는 교육/상담/학습, 인문/문학/예술, 컴퓨터/인터넷/게임, 자연/과학/환경/,취미/오락/스포츠, 일반상식/뉴스/미디어, 기타/참고자료 등의 카테고리로 추천되는데 녹색 마크를 부여함으로 청소년 건전문화의 확산을 그 목적으로 한다.
혹 어떤 기독인은 “반드시 정부관련 기관에 의해 추천되고 소개될 필요가 있는가”라든지 “그 기준이 교회의 운영 기조와 합치될 수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인터넷을 통해 성경연구를 한다는 것은 영성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많지 않은 줄 안다. 정부를 비롯한 공신력 있는 기관이 인정할 만하게 ‘사회의 소금기 있고 영양가’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교회가 운영하는 것은 의미있고 충분히 권장할만한 일이다. 개 교회가 아무리 좋은 영적 훈련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 좋은 것을 알릴 수 없고, 알리기에 너무 좋은 인터넷을 무시하는 것은 급변하는 정보의 세계를 인식하지 못한 안일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개교회의 인터넷 사이트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만한 곳들은 정말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최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연구논문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내 고교생 중40% 이상이 인터넷 중독증의 범주에 들며 학습용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비율이 1.1%에 불과하다(1월 31일자 동아일보 사회면)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청소년 인구의 무려 40% 이상이 밥은 안 먹어도 괜찮지만, 인터넷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이러한 통계보고는 교회 안에서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청소년 인구에 대하여 교회가 자기반성을 할 때 인터넷에 대한 교회들의 관심결여를 결코 변명할 수 없음을 실제로 알려주고 있다.


만약 교회가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한다면, 청소년들을 위하여 재미있고 건전하며 장차 교회와 사회에 기여할 기독인의 꿈을 키울 만하게 어떤 내용들을 담을 수 있을까?


① 재미없고 컨텐츠가 없으며, 체계적이지 않고 자주 업데이트 하지 않는 사이트는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1월 22일 동아닷컴 평가단은 ‘톱 사이트 vs 톱 사이트’란 기획 이벤트 행사를 통해 하버드대학교와 서울대학교의 홈페이지를 비교하고 있다. 비록 교회가 아닌 학교의 사이트 운영비교이긴 하지만 역시 최신 감각을 가진 평가단에 의해 행해진 것이고, 각 나라의 대표급 기관의 사이트 비교라는 점에서 이미 단독 홈페이지를 비교하고 있거나 현재 계획 중인 교회들에게 좋은 격자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해 본다.
우선 서울대의 홈페이지에 대하여 평가단은 이런 평가를 내렸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대단히 부실․제대로 설계되어 있지 않은 정보구조․혼란스러운 네비게이션․컨셉이 없는 디자인․참으로 볼 것이 없다. 98년 정도에 만들어진 홈페이지를 보는 듯․가끔씩 깨진 링크도 보이고․한 가지 컬러를 변화없이 사용하여 좀 지루한 느낌․그래픽의 마무리 처리 미숙․인터넷을 잘 모르는 사람이 관리하는 듯․전반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개선이 요구됨”
반면에 하버드 대학교에 대하여는 “체계적으로 설계가 잘 되어 있고 네비게이션도 용이하게 정보 찾기도 수월․컨텐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장점․각각의 컨셉에 맞는 디자인이 적용됨․그야말로 볼 것이 풍부․검색기능이 무척 뛰어나․어느 페이지를 가더라도 재학생과 방문자를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네트웍을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픈 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마디로 서울대 홈페이지에 대한 네티즌들의 기대를 무참히 깨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서울대 홈페이지의 완전한 참패로 결론짓고 있다. “서울대는 홈페이지가 구닥다리 같아도 우리나라 최고의 학생들은 잘만 모이니까 신경 끄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위의 평가를 보면서 너무도 쉽게 느끼게 된다. 오히려 왜 우리는 안되나 하는 은근한 자존심을 불러일으킨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떤 인터넷 친화적인 사람도 그 사이트가 볼거리가 없다면 한두 번 찾아보고는 이내 관심을 다른 데 돌려버린다.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방문해 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사이트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데 왜 그 재미없는 곳을 애써 찾아오겠는가?
많은 교회들의 홈페이지를 찾아볼 때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담임목사님 사진, 약간의 목회비전, 교역자 및 당회원들 사진과 연락처, 간단한 교회소식, 게시판, 방명록 등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재미없고 진부하기 짝이 없이 만들어져 있다. 비교적 사이트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교회들에게서마저 느껴지는 객관적인 인상은 마치 정부기관 홈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딱딱하고 어색한 감을 느끼게 한다. 기독교에 처음 관심을 가지는 청소년들에게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이력이나 얼굴이 인자하신 것을 보고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일으킬 수 있을까? 교회의 약사(略史)란을 보아도 주로 목사님이 언제 어떻게 바뀌셨고 교역자들이 몇 년, 몇 월일에 강도사가 되고 안수를 받았다 혹은 기도원을 언제 세웠다는 등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들은 기대이하로 적다.
교회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매년 발간되는 요람이 교인들의 전화번호 찾는 도구로 전락한 오늘날의 불행한 일반적인 현실과 마찬가지로 교회 홈페이지가 가지는 기능이 요람의 평가절하된 위치와 별로 거리가 멀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회 홈페이지가 지금의 현실처럼 교회요람의 성격을 탈피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에겐 영원히 먼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필자는 교회 안의 인적자원이 사회의 인적 자원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교회 안에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이 널려 있다. 웬만한 중고등부 학생들 중에는 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작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이 아동음란 사이트를 만들어 돈을 버는 지경에 이른 마당에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부서와 교회의 홈페이지 운영에 참여케 한다면 교회를 정말 청소년 자신들이 가꾸고 소개하고 자랑할 수 있는 자신들의 교회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동기유발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이런 일들이 왜 중요한지 내가 시간을 아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깊이 느끼지 못해서 안 할 뿐이지, 만약 교회의 식구들과 우리 학생들에게 그 필요성, 심각성을 깨닫게 해 준다면 비교적 적은 자본을 들이고서도 지속적인 전도,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선 교회들이 인터넷상의 유수한 사이트들 가운데 특별히 건전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곳들을 자주 찾아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배우고 교회 홈페이지에 적용하는 기본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가끔 청년 학생들 혹은 장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교회 홈페이지의 개선점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② 청소년을 향한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분명한 방향과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교회 홈페이지는 대부분 장년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전혀 자신들만의 공간이나 자신들이 교회 안에서 가지는 정체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 청소년의 일탈행동이나 가정 밖으로 아웃고잉(out going)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청소년이 부모로부터의 관심과 사랑, 애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있다. 부모가 아무리 ‘내가 너에게 쏟는 희생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네게 하는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것’이라고 백 번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 문제는 자녀들이 정말 좋아하고 추구하고 있느 이 무엇이며 그들의 바라는 것들이 실현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영적 대모(大母)로서의 교회가 청소년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각인시켜 주기 위하여 무엇을 인터넷상에 담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일구어 내야 하는지는 분명해진다. 홈페이지 귀퉁이에 자리한 그들의 위치를 중심으로 오게 하고, 그들을 감독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기(care) 위하여 교회가 있다는 점이 가슴에 느껴지도록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 스스로 교회의 여러 사역을 참여하고 장래에는 보다 큰 일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도록 기도하고 간절히 전구(轉求)하고 있음을 가슴중심 안에까지 파고들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그 연령적 특성상 스스로를 주인이라기보다는 주변인(周邊人)으로 가치규정 하는 변천적 시기에 놓여져 있다. 중․고등학교 시기를 늘 부모나 사회, 교회에 의하여 지시 받고 감독 받는 역할만 하면서 오직 공부에만 내몰린 것이 그들의 자화상이다.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비로소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에 대한 책임을 자기 혼자 도맡은 양 고민한다. 그러다가 사회에 들어가서는 기독인이지만 다시 부조리한 사회일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기존재에 기가 꺾이고 마는 일이 허다하다.
이제 교회가 청소년들 스스로 교회사역에 참여하고, 인터넷을 통해 건전한 자아형성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참여의 장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간의 연대도 인터넷을 통해 너무 쉬워졌다. 과거 필자는 대구에 살면서 광주의 교회와 지역간의 벽을 허무는 대학부 연합수련회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 불과 10년 전인데도 인터넷이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을 소비할 뿐 아니라 며칠씩 숙식하면서 겨우 1년에 단 한 번 지역간 공동체적인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시공간적인 육체적인 낭비와 에너지 소모를 극소화하면서도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키즈(kids)가 집안에 하나씩은 다 있다.
정보 상호교환이 용이하도록 된 이러한 사이버 환경은 교회가 청소년들을 위하여 사역을 제시할 때 ‘선언적’ 내용을 지양하고 ‘개방적’ 방향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닫힌 문화와 세계를 직감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청소년들의 이런 경향성을 주지하고 스스로의 생각들이 구현되는 나의 교회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③ 개혁주의 신앙인들이 빛되고 소금되기를 노력한다는 사실이 홈페이지에 스며 있어야 한다.
영혼구원이 교회들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목표이지만 사회봉사 및 시민운동을 교회가 주도해야 할 사명 또한 주님이 주신 사명 가운데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회질서의 파괴를 목적하지 않고 빛으로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 소명은 비신앙인들보다 우리 개혁주의 신앙인들에 의해 좀 더 유효하게 진전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사실 사회봉사는 초기 기독교의 정착시절 기독교가 의료 및 학교 설립을 통해 주도하였던 분야였으나 해방이후에는 거의 국가나 시민단체 주도형으로 주류가 형성되어 왔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잘 보이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개 교회들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회봉사(주로 경로당 방문, 노숙자 식사, 고아원 방문 등)를 시행하고 있는 줄 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교육되고 있느냐를 생각해 보면 역시 대답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신문이나 방송과 함께 시민운동 여론형성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 중의 하나는 인터넷임을 교회가 주지해야 한다. 꼭 거리에 나가서 외치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들을 가상공간을 통해 빠르고 멀리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교회가 공부나 해라는 식의 사회 주류 속에 매몰되어 절망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용구와 사명이 있다. 성경을 읽고 예배에 출석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자신들의 윤리적 실천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가지 부조리와 사랑 없음을 일깨우고 계도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청소년들도 체험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주일예배를 빠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묵과되는 교회의 현실 속에서 다만 ‘1년만 참아라’는 식의 무책임한 가르침보다는 교회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요 참여자임을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정말 신앙이 없는 누가 보아도 자기 자녀들을 맡기고 싶은 건전하고 좋은 교회교육 및 사회봉사와 참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의 운용을 위하여 사회일반이 심지어 필요한 재정을 기부하는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성 나환자촌을 돌보는 꽃동네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오늘날의 꽃동네와 단설 사회사업 대학원까지 설립토록 한 재원(財源)은 천주교인들 자체에서만 기부 된 것이 아니다. 다수의 불신자들이 그 사업에 참여하길 기꺼워하고 즐거워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다른 좋은 예가 된다. 미국에서는 수천억 원의 재산을 교회에서 운영하는 자선단체나 사회활동,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에 유산으로 남기는 일들이 흔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도록 교회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부문화가 서서히 인터넷을 통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작년 12월 달부터 구세군은 사이버 자선냄비(www.good-c.org)를 개설했고 한 온라인게임 사업체(www.joycity.com)에서도 지난 1월까지 구세군 냄비를 지원했다. 산타나라 인터넷(www.santanara.net)은 광고클릭을 통해 쌓여진 적립금을 이용해서 대한 사회 복지회,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 한국 장애인 재활협회 등을 돕고 있다. 개 교회 청소년 부서에서 벌이고 있는 순수 사회 봉사활동 및 NGO 활동들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도울 수도 있는 그런 사이트를 바란다면 괜한 욕심일까?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하여 교회가 하고 있는 좋은 일들을 인터넷만큼 손쉽게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또 어디 있는가? 다리품 팔 필요도 없이 클릭 한번으로 한눈에 시간과 지역마저 뛰어넘어 눈앞 30센티미터 앞으로 스스로 찾아들게 하는 주님이 주신 이와 같은 보물을 적극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


교회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무관하여 절대 생각할 수 없다. 교회는 인터넷의 여러 유해한 환경 속에 중독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우리 청소년들을 묵과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고, 인터넷을 통해 교회 학생활동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를 접하는 헤아릴 수 없는 잠재적 교회 자산들을 껴안을 수 있는 교회 홈페이지를 구축하여야 한다. 1월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로빈슨 유엔 인권 고등법무관이 말한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증오와 편견의 메시지가 갖는 파괴적 효과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제언(提言)을 교회의 리더들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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